그의 머리글 인사를 대신 읽어 보세요.
머리글
↝ 주위에 널브러진 것이 박사 학위들이다. 하다못해 점쟁이들도 철학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박사를 붙여놓지 않으면 고객이 찾지 않는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가짜 학위 장사로 돈을 버는 외국 사기집단도 있다. 박사라면 그 방면에서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인가? 근자에 와서는 한의사들도 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뒤늦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환자만 잘 보면 그만이지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이 내 배짱 소견이었던 것인데, 레지던트 시절, 주임교수이자 학과장이신 스승께서 나를 불러 엄하게 꾸짖었다. “현실을 모르는 돈키호테 식 아집이다. 실제로 우선 박사 학위가 없는 의사 들을 환자들이 신뢰하지 않으며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도 반감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 소지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아예 무명으로 시골 가서 썩을 요량이 아니면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뜨끔한 나는 뒤늦게 후배들과 함께 학위 입학시험을 치렀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전공과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어시험,
제2외국어 시험 등은 준비와 실전에서도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러구러 약 10년에 걸친 과정 끝에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영 실감이 나지 않고
찜찜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자꾸 불만이었던 것이다. “내가 박사라니?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러나 그 대답은 또 다른 선배 교수님께 얻을 수 있었다. ”박사라는 것은 당신이 그 분야에서 전지전능하다는 뜻이 아니고, 이제부터 그 분야에서 제대로 공부할 자격이 생겼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명서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이제부터다.
라는 마음으로 한 푼의 가치 밖에 없는 학위에 대한 자만심부터 버려라” 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 후로 일구월심 심장과 심장 외과에 일생을 바쳤다.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 보니 古稀를 넘겼다.
버나드 쇼는 그의 묘비에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의역하면, “어영부영 살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고 그의 유언대로 쓰여 있다. 그처럼 인생을 달관하고 평생 그 일에만 매달려 공부하고 답을 찾던 분마저 저러하니 나 같은 張三李四야 말해 무엇 하리. 그나마 얄팍하게 쌓였던 나의 경험과 지식은 다 썩어서 다시 티끌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갈 것이다. 누군가는 약간의 진화 과정을 가미하여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지금은 은퇴하고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기대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너무 빨리 은퇴한 것이 아닌가, 공연히 애늙은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은근히 겁이 난다. 그래서 속으로는 환자와 사회를 위해서 더 사용되어졌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최신의 의학 정보에 접근해야하고 소위 up-dated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updating 방법은 의학 논문을 자주 접하고 관련 학회에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눈도 침침한데 medscape 같은 의학 전문 정보 페이지에 매달리는 것은 재미도 없고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으며 이미 은퇴한 늙은 의사들이 학회에 나타나서 맨 앞줄에 앉아 졸고 있는 것도 꼴불견이다.
↝ 내가 생각하기로는 책을 한 번 써 보는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쓰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것, 환자에게 질문을 받았지만 몰라서 대답을 못 했던 것, 시간 여유가 생기면 더 자세하게 공부를 해 보았으면 했던 것, 또는 매스컴에서 젊은 의사들의 입에 膾炙 되던 자기가 만든 heuristic 的 가설이 아닌 의학적 fact, 등을 더 자세하게, 시간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파헤쳐 보는 것이다.
심지어는 “Back to the future”와 같은 공상 과학(science fiction) 영화를 보면서 미래의 의학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 등, 글 쓸 대상을 선정해 놓고 새롭게 공부하면서 인생과 학문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publication 되어 일반인 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Best seller 반열에 올라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였다. 그리고 퇴직 후 그렇게 일 년 정도가 지나고 있다. 환자를 돌보고 수술하고, 국내외 학회에 참석하고 논문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고, ~~~~ 등등의 일로 인해서 정말로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참으로 애석하게도 지금 일 년 정도의 과정은 나의 학문이 질적 양적인 면에서 너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으며, 한 푼 값어치도 안 되는 자기도취에 빠져서 얼마나 많은 척을 떨었는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학문의 길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동서양 현인들의 말씀이 내 폐부를 찌른다.
“ 少年易老學難成 勿謂今日不學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오늘 공부하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 것이며, 올해 공부하지 않고 내년이 (또) 있다고 말하지 말라.
↝ 克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노벨상,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짐짓 물러서 있다면 자기 부정의 패배의식에 불과하다.
젊은 후학들이여, 매스컴 타기와 名醫 경쟁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촌음을 아끼길 부탁한다.
나의 doppelgänger는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2015년 가을에
著者 主要 略歷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胸部外科, 心臟外科 敎授
三星서울病院 胸部外科, 心臟外科 初代 科長
三星서울病院 心臟血管센타 2代 센타장(所長)
三星生命 三星 노블카운티(CCRC) 初代 Medical Director
其他 主要 經歷
197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3 서울대학교 대학원 醫學博士
1980-1985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6-1994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7-1988 Canada Alberta University Hospital, adult
Cardiac Surgery Fellowship
1991 New Zealand Green Lane Hospital. Adult Cardiac
Surgery 연수
1994-2000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tenured professor)
1996 KBS 諮問委員
學會 活動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순환기학회
대한노인병학회
The Asia-Pacific Congress on Diseases of the Chest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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